JENESYS 한국청년방일단(고등학생) 방일 후기(2017년 1월 17일~26일)

2017/2/10
주부산일본국총영사관이 주최한 일본가요대회와 고교생 일본어말하기대회, 일본퀴즈대회 등에서 선발된 고등학생 19명이 부산쓰시마사무소 한선주 주임의 인솔로 2017년 1월 17일부터 26일까지 10일간 “JENESYS 한국청년방일단”으로 도쿄(東京), 오키나와(沖縄), 오사카(大阪) 등을 방문하고 귀국하였습니다.
이번 방일단으로 참가한 김민서 양의 방일후기를 소개합니다.
김민서(마산여자고등학교 2)
 
   지난해 주부산일본국총영사관이 주최한 제16회 고교생 일본어말하기대회에서 입상하여 이번 'JENESYS 한국청년방일단‘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묵직한 캐리어,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 거기에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그것을 ‘설렘’이라 칭했던 첫날. 그렇게 우리는 하늘을 건너 일본으로 향했다. 하늘은 우리를 맞이하듯이 맑고 눈부시게 빛났으며, 일본에서 맞은 첫 바람은 긴장하지 말라는 듯 머리를 흩트리며 지나갔다.
어둡다면 어둡고 밝다면 밝은 도쿄에서의 첫 어둠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는 도쿄타워의 아름답고도 따뜻한 빛을 두 눈 가득 담을 수 있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도쿄 타워는 화려하게 웅장했고 도쿄타워 위에서 본 야경은 또 하나의 우주를 보는 듯했다. 별처럼 빛나는 도시의 불빛들,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들. 그곳의 이미지를 기억 속에 많이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별 다른 감각은 없었다. 단지 얼굴이 ‘좀 부었네!’ 정도였다. 버스의 움직임을 따라 몸을 흔들다 눈에 들어온 것은 아침의 도쿄타워. 우리가 향한 곳은 도쿄타워 바로 근처의 한 레스토랑이었다. 그리고 그 위층에서 우리는 ‘more than japan 프로젝트’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프로젝트 제목 그대로 ‘좀 더’ 일본을 알리고자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일본의 힘에 감탄을 한 순간이었다. 자국의 문화를 지키고자, 알리고자, 자연스러워지고자 노력하는 점은 정말 배워야 할 점이라 생각했다. 강의가 끝나고 다양한 질문들이 오갔고, 우리는 환영오찬회에서 다함께 잔을 들었다.

  “Wonderful!”
  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오감이 추억을 새겼다.

  한복은 하늘과 꽃의 옷이며, 기모노는 땅과 대나무의 옷이라 하였다. 우리는 땅과 대나무의 옷, 기모노를 입게 되었는데, 처음 입어보는 일본의 전통 옷에 마치 고장난 로봇과 같은 몸짓이었다. 배를 누르는 오비(帯)는 어색하여 답답하고, 걷자니 평소 보폭의 반밖에 디디지 못하는 넓이. 하지만 정갈하게 펼쳐 떨어지는 천의 끝자락까지도 아름다운 그들의 전통 옷 기모노. 우리는 이 기모노를 입고서 다도체험을 하러 갔다. 따뜻하게 끓고 있는 물과 진한 녹색 가루, 그리고 잡생각을 쓸어줄 것 같은 차를 우리는 소리까지. 달콤한 간식으로 입안을 즐겁게 한 후, 차분하게 정리해주는 차의 쓴맛까지 고요하며 기뻤던 그 시간. 하지만 일어날 땐 모두가 다리에 쥐가 나 간신히 일어났던 그 시간. 다도란 이런 것이다! 를 확실히 느낀 시간이었다.
저녁으로 먹었던 스모선수들의 창코나베(ちゃんこ鍋). 그 가게 위로는 전철의 묵직한 철의 마찰음이 진동을 울렸다. 전철 선로 밑에 위치한 가게 환경 또한 신선했다. 먹으면서 위장까지 울렸던 그 소리는 이제 다시 한 번 더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한 고등학교의 석상. 그곳에는 크게 ‘난료’ 라고 쓰여 있었다. 이곳은 사이타마현립 난료고등학교(埼玉県立南稜高等学校).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환영을 받으며 들어간 첫 교실은 생물수업을 하고 있었다.

  “세포 B가, 이 세포와 만나 변화하면….”
  과학을 놓은 지 꽤 됐다.
  “I want to go~"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닐지도
  “이 한자들을 쓰는 연습을 지금 하고 있는데, 이건......”
  한자 공부 더 해야겠네.

  여러 수업들을 보면서 제일 새로웠던 것은 교실의 모습, 시간표. 일본의 고등학교는 한국의 학교와 다르게 해가 뜨면 등교하고 해가 아직 떠 있을 때 동아리 활동 혹은 하교를 한다. 나는 고등학교 입학 이래 햇빛을 언제 봤었더라 가물가물할 정도로 하교시간이 늦었다. 그리고 동아리 활동을 활발히 실시하는 환경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다들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었고, 주먹밥을 들고 돌진, 삼삼오오 모여 수다, 쉬는 시간의 모습은 친근했고, 점심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먹은 도시락은 맛있었다. 내 이름은 김민서야! 친구도 생겼다.
정수리 위에 캐릭터, 눈앞에도 캐릭터. 이곳은 일본 문화의 성지 아키하바라(秋葉原). 만화에 대한 여러 정보 혹은 그 과정들을 전시해 두었던 애니메이트. 나는 아키하바라에서 고대하던 일본의 만화책과 소설책을 사서 행복지수를 채웠다.

  “5,630円でございます。”

  누가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했는가. 이렇게 살 수 있다는 증거를 직접 경험해보았는데.
그 다음에 간 곳은 오다이바(お台場). 저녁을 먹기 전 잠깐의 시간에 나는 일본 특유 미(美) 스타일의 머리핀을 두 개 샀다. 그러고 나서 저녁을 먹었다. 일본의 샐러드바는 메뉴만 살짝 다를 뿐 분위기는 친숙했다. 덕분에 저녁은 편안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드럽게 볼을 감싸고 지나가는 미지근한 공기, 도쿄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온도를 지닌 오키나와(沖縄). 오키나와는 오키나와 소바(そば; 메밀)를 미소시루(味噌汁; 된장국)와 같이 거의 모든 음식과 함께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많이 먹는 것이 오키나와 특유의 문화라고도 한다. 탄수화물의 함류가 보다 추가되어 내 속이 좁은 것이 너무 아쉬웠다. 정말 맛있었기 때문에.
베니이모(紅芋) 타르트. 자색고구마 타르트. 이곳 타르트의 맛은 정말 잊으면 큰일 나겠다 싶어서 현재 이 글을 쓰는 시점, 우리 집에는 이 타르트 한 박스가 거의 모셔지다시피 놓여 있다. 과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이 회사에 대한 것을 듣고. 다음에 또 가서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유쾌하면서도 가벼웠던 바탕음, 중간 중간 흥겹게 울렸던 웅장한 북소리. 우리를 그렇게 즐겁게 맞이해준 것은 아마 오키나와의 요미탄손(読谷村), 홈스테이 가족 분들이 처음일 것이다. 나를 포함한 4명은 6, 7살의 여자아이와 할머니, 부모님 이렇게 5명의 가족과 함께 이틀을 보내게 되었는데, 6살 여자아이의 이름은 ‘무아’, 7살 여자아이의 이름은 ‘쥬리’. 귀여운 두 아이들과 어머님과 함께 차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께서는 요리를 정말 잘하셨다. 정성이 가득 들어 있기도 했고 꼼꼼한 성격도 비춰지는 듯했다. 우리가 집에 갔을 때 앞으로 우리가 먹을 식단이 음식 사진과 함께 전부 체크가 되어 있었기에 잘 알 수 있었다. 대단한 어머니라 생각했다. 함께 저녁도 먹으며 내일 어디로 놀러 다닐까 하며 즐거운 고민을 했다.
  아침이 되었다. 자각하고 있었던 피로와 몸이 직접 느끼고 있었던 피로는 달랐는지 그만 모두가 늦잠을 자 버렸지만 어머님께서는 괜찮으니 천천히 준비하라며 식사 준비를 하셨다.
  오전에 마을 시장에서 작은 이벤트가 열리고 있었다. 여러 퀴즈들을 맞추며 도장을 모으고, 과자세트와 미니 열차 탑승권을 받았는데, 내가 타기에는 너무 작은 사이즈가 아닌가 싶어 무아가 타는 것을 그저 지켜보았다. 무아가 탄 것을 보니 역시 나는 안 타길 잘했다 싶었다.
점심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사타안다기(サーターアンダーギー)’라는 오키나와 전통 과자와 야키소바(焼きそば)를 먹었다. 이번에는 두 음식 모두 우리 넷이서 어머니께 배워 만들어 먹게 된 것이다. 미숙했지만 그래도 제법 음식 모양새가 났다.
  그 다음에는 동네에 있는 서점과 드럭스토어에 갔는데, 일본어를 즐겁게 배우는 것에 관심이 컸던 나는 ‘덕후질’이라는 이름으로 잡지와 만화책, ‘공부 해볼까’라는 마음으로 일본 학생들이 평소 공부를 위해 사용하는 국어 문제집 두 권을 샀다. 그런 나를 보고 어머니께서는 오타쿠네! 하셨는데, 일본에서는 좀 예전에는 안 좋은 말이었지만 현재는 한 장르의 마니아, 깊게 알고 있는 전문가라는 좋은 말로 쓴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좋지 않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로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긴 했지만 의미가 의미인만큼 기분은 한 층 더 좋았다.
  우리가 외출을 하고 나서 돌아오니 “학원 다녀왔습니다!”하며 인사하는 쥬리.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저녁 식사를 준비할 동안 무아와 쥬리와 함께 산책을 하고 오라고 하셔서 이번에 아이들과도 함께 마을 주변을 구경할 기회가 생겼다.
  구름이 마치 만들어지고 있는 솜사탕처럼 조각나 떠다니며 저녁노을의 그림자를 드리웠고, 언덕과 적절한 선을 유지하며 만들어진 아기자기한 건물들, 하늘색으로 가라앉아 선홍빛으로 뒤섞이는 등, 그 후 바탕 빛은 포근하면서도 시원했다. 이런 그림 같은 배경 속에서 산책을 하다니, 이것 또한 경험하기 쉽지 않은 산책이었다.
  쥬리는 이것저것 아는 것이 많았다. 동네에 피어 있는 꽃, 나무, 풀 들이 어떤 것이고, 동네에 있는 동물들을 알려 주고 길 안내도 해 주는 것이, 보통 지식이 아니었다. 나는 쥬리에게 나뭇잎이 넓고 큰 나무의 나이를 세는 방법까지 배웠다. 자연에서 배운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쥬리는 제대로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뛰어 내려가는데 발이 안 멈춰~!”
  아직 애긴 애였지만 말이다.

  어머니께서 우리의 마지막 저녁에, 지금까지 찍어온 사진들을 여러 장 작은 사이즈로 인쇄하여 작은 사진판과 함께 주셨다. 각자 자기가 만들고 싶은 모양으로 만들라며 마련해 주신 작고도 의미 있는 선물이었다. 붙이고 싶은 사진이야 많았다. 아니 부족하다면 부족했던 사진들을 어떻게든 우겨넣어 하나라도 기억하고 싶었던 우리의 모습이 벌써 추억의 한 장면이 되었다.
  아직도 그 이별의 순간이 생생하다. 삐졌다는 듯이 거세게 부는 바람 때문에 머리카락은 엉망이지, 친구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지, 인사를 하며 지나갔던 가족들의 터널은 따뜻했고, 꽃길이었다. 버스 안은 눈물바다. 하지만 이내 휴대전화 화면 너머로 들려오는 웃음소리들. 된다면 다시 만나고 싶은 모두들과의 홈스테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
  
  붉은 적색의 등불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우리를 반겨 주는 이곳은 오키나와의 전통 공예 빙가타(紅型) 염색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물감은 원색으로 강한 이미지였는데, 막상 칠을 하고 나서 보니 처음 한 것치고는 그럭저럭 예쁘게 됐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 방 벽에 잘 걸려 있다. 풀 먹였던 부분을 씻겨내는데 엄청난 힘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체력을 소비하여 완성되는 빙가타의 옷들을 생각해보니, 전문가들의 정성을 다시 깨우친다. 점심은 바로 앞의 식당에서 먹었는데, 조금씩 모든 메뉴들을 먹어보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채소를 이렇게 맛있게 먹었던 적은 없었는데, 여기서 정말 맛있게 먹고 간다.
  주라우미(美ら海). 이곳의 방언으로 아름다운 바다. 우리는 주라우미 수족관으로 향했다. 이름을 공모했던 사람의 센스가 돋보였다. 말 그대로 아름다운 바다를 보여 주었던 곳이었으니까. 날이 조금 흐리긴 했지만, 흐린 구름 사이로 내비치는 햇빛이 풍경을 더 위엄 있게 보여 주었고, 수족관에 있는 바다 생물들의 관리 방법과 그 현장을 견학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지식을 갖고 근무하고 계신 한국인 직원 분들이 그저 존경스러웠다.  
  파란 공간에 물결은 얼굴 위를 춤추고 신비한 생명체들이 그 위를 그림자를 드리우며 지나갔다. 지구의 우주, 바다의 안을 간접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으며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지금 기나긴 터널 안을 지나며 우리가 이토록 열심히 향하고 있는 목적지는 오키나와의 고등학교, 오키나와현립 나하국제고등학교(沖縄県立那覇国際高等学校)였다. 이것이 마지막 고등학교 방문이다. 1학년 1반 학생들과 산신(三線)이라는 전통 악기를 연주해보는 수업을 하였다. 그 당시 내 짝이었던 시라도우 군이 앞으로 나와 환영 인사를 하고 나서야 알았다. 아, 이 반 반장이구나, 하고.
  한국에 대해 여러 가지가 궁금했었던 것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질문의 연속이었다. 관심이 많아 보였기에 정말 기쁘게 하나하나 대답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는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걸 정말 잘했다. 악기를 못 치는 것이 자랑인 나를 불과 몇 십분 만에 아리랑을 끝까지 연주할 수 있게 만든 대단한 친구였다. 그렇게 척척 모든 걸 박사처럼 알려 주었던 시라도우 군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표한다.
  고등학교 아이들과 작별을 한 뒤 향한 곳은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이곳에는 우리 한국인의 위령탑이 있었다. 그리고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던 한국인의 이름들. 차갑고 검은 돌 위에 새겨진 그들의 이름들. 그리고 수없이 이어지던 비석들의 연속. 지금의 평화까지 얼마나 많은 언덕이 있었는지를 보여 주었던 그들의 이름들을 떠올리며 감사와 안녕의 마음을 전했다.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일정, 오키나와에 있는 세계유산 슈리성(首里城)터로 향했다. 정갈하게 정리된 돌길을 오르자 강하게 붉은 성과 푸르게 뚫린 하늘이 웅장하게 올려다보는 시선을 눌렀다. 성의 내부가 어땠는지도 볼 수 있었고, 슈리성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힘이 있던 왕좌, 깔끔하고 각졌던 내부, 화려하게 빛나는 성의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었던 나의 머릿속을 신선하게 깨어준 성이었다.
  그리고 오키나와에서 마지막으로 먹었던 식사 다코라이스와 오키나와 소바, 이때까지 먹었던 곳 중에 가장 맛있었던 곳이었다. 아니면, 단지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이라는 의미의 효과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비행기에서 꽤 숙면을 취했던 것 같다. 눈을 뜨자 오사카였으니 말이다. 오사카(大阪)의 공기는 또 오키나와와 달랐다. 눈인지 비인지 바닥이 젖어 오르는 공기는 상쾌했으며 비행기 날개 끝을 따라 오르던 태양은 아직도 인상 깊다. 차갑게 콧등을 에워싸던 겨울바람에 기침 한 번 나왔다.

  이온몰의 이미지는 우리나라의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정도의 규모였다. 그만큼 여러 곳에 있고 넓기도 했다. 나는 평소 도시락 생활을 하고 있기에 일본의 다양한 도시락들 앞에서 엄청난 고민을 했었지만, 결국에는 예쁜 도시락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자유식을 먹게 되어 친구와 둘이서 이온몰 식사코너의 다코야키(たこ焼)와 오므라이스를 먹었는데, 역시 본토의 다코야키와 계란이 푹신하고 맛있기로 소문난 오므라이스의 맛은 최고였다. 식사 후 봤던 마트 역시 규모가 대단했는데, 한국에서 비싼 건 일본에서 싸고, 일본에서 비싼 건 한국에서 쌌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가격의 기준이 어떻게 이루어진 건지 궁금해진 순간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와타이코(和太鼓) 라는 일본 전통 북 체험을 하기 위해 한 공연 팀을 찾았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새삼 박치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북을 치는 내내 팔 아픈 줄 모르고 즐겁게 쳤던 것 같다. 팀의 멋진 공연도 듣고 볼 수 있었기에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북을 치는 몸짓 하나하나에 엄청난 박력이 느껴졌다. 건물 내부의 벽을 타고 일렁이다 발밑으로 내려쳐지는 북의 소리는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은 전율이었다.

  “そーれ!”

  덜덜 떨려오는 어깨와 팔을 문지르며 도착한 곳은 오사카의 인스턴트 라면 발명기념관. 이때까지 개발해온 인스턴트 라면의 종류와 역사, 개발자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2층에서 우리는 치킨라면 만들기 체험을 했는데, 평소 일본의 치킨라면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라면이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재료나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고소한 맛이 날 수 있나 싶었는데, 일반 기름이 아닌 참기름에 튀긴 것임을 알고 나서 이해를 했다. 고소하지 않을 수가 없지.
  
  우리가 마지막으로 묵을 호텔에서 빌린 회의실에서 우리는 성과보고회와 식사를 했다. 생각해보니 모두와는 마지막으로 먹는 식사였다. 성과보고회를 하면서 터졌던 아쉬움들과 웃음들은 긴 10일간의 여운들이었음이라. 그 아쉬움의 크기에 힘입어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먹으며 놀았다.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지 못한 아쉬움에 몇 마디 더 나누고, 일본에서 사귄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한국으로 돌아간다며 작별과 안부의 인사를 전했다.

  “気をつけてね!”
  “お疲れ様でした!”

  그리고 다시 비행기에 올라 고개를 돌려 보았던 일본의 마지막 하늘은 아직도 선명할 정도로 푸르고 맑았다. 모두와의 단체 사진, 작별 인사, 연락처 교환, 그리고 뒤돌아 보였던 마중 나와 준 엄마의 얼굴까지. 길었던 10일의 시간은 그렇게 끝났고 남부럽지 않은 기억이 되었고 일본을 새삼 더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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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채은(김해외국어고등학교 3)
  이번 방일을 통해 저는 일본에서 따뜻한 사람들의 환영,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인연과 추억을 만들고 왔습니다. 도쿄와 오키나와는 처음이라 많이 기대했는데 그만큼의 기대치를 하고 온 경험인 것 같았습니다. 많은 곳을 둘러봤습니다만, 이번에 미처 들러보지 못한 곳은 다음에 자유여행으로라도 꼭 오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습니다. 도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의 따뜻한 분들과 만날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이승민(경북생활과학고등학교 2)
  일본에서 5일째 되던 날에는 ‘만나면 가족’인 우리 홈스테이 가족들과 함께 보낸 날이었네요. 그분들과의 기억은 10일 동안 있었던 어떤 경험과 기억들보다 더 빛나고 즐거웠습니다. 오키나와의 새로운 가족에게 함께 머물렀던 친구들과 편지를 같이 보내자고 했습니다. 홈스테이 가족들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도 그 후에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에게 이렇게 깊은 정을 쌓을 수 있게 해주신 분들과 기회를 만들어 주신 분들께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가민(오천고등학교 3)
  마지막 날에는 그렇게 헤어지기 싫어 징징대던 제 자신이 생각나네요. 10일 동안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얼굴도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를 사람들과 만나 일본의 문화와 가정에 대해 느끼고 그들 속에 녹아들어 현지인처럼 생활을 하고 학생들과 함께 공부도 하며 지금은 sns로 연락하고 있는 홈스테이의 두 번째 가족과 일본의 친구들 너무나도 좋은 경험이었기에 감동을 느낍니다. 다시 한 번 모두가 만날 수 있다면 같은 멤버로 더욱 더 멋진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김미령(경북외국어고등학교 2)
  그토록 꿈꿔왔던 일본에서, 일본어를 마음껏 듣고 말하고, 가게도 가보고, 학교도 가보고, 홈스테이도 하고, 좋은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 그리고 또 다른 가족을 만나 꿈을 이룰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학교에서만 배웠던 일본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어 놀라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일본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스스로 헤엄쳐 나가며 저의 바다는 더욱 넓어졌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꿈꾸고, 일본을 향해 끊임없이 헤엄치겠습니다. 또 만납시다. 꼭 다시 가겠습니다.

조은서(부산외국어고등학교 1)
  9박 10일간의 꿈만 같았던 방일을 끝내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하기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만큼 즐거운 추억, 소중한 인연이 많이 생겼단 의미지요. 앞으로도 이 소중한 인연들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방일기간 중 특히, 난료고등학교와 나하국제고등학교 학생들과의 교류는 더 뜻 깊은 행사였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유익한 기회였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열흘이었습니다. 

이지원(경북예술고등학교 1)
  9박 10일 동안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한국에 돌아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일상에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여러 가지 체험과 만남을 통해 좀 더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중한 인연도 생겨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를 위해 여러 가지 챙겨 주시고 신경써주신 모든 분들, 방일단으로 참가해서 동고동락한 단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김동환(강북고등학교 2)
  열흘이 너무 빨리 지나갔지만 좋은 추억 많이 만들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평소 배우기 힘든 일본 다도를 직접 체험해 보고, 기모노도 직접 입어볼 수 있는 유익한 기회가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 전통 북 공연 관람과 더불어 실제 연주해 볼 기회가 있어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박준영(부산국제외국어고등학교 2)
  9박 10일,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특히, 오키나와에 새로운 가족이 생겨서 너무 좋았습니다. 홈스테이 가족과 함께 오키나와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마츠리도 참가하면서 일본 문화와 평범한 가정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앞으로도 일본에 대해 좀 더 많이 보고 배웠으면 합니다.